한국 코미디사의 거장, 전유성을 추모하며
2025년 9월 25일, 한국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. 그는 단순한 희극인이 아니라 한국 코미디의 설계자이자 후배들의 멘토였으며, 무엇보다 ‘개그맨’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인물이었습니다.
📝 개그맨이라는 단어의 탄생
1970~80년대 ‘희극인’이라 불리던 시절, 전유성은 대담하게 **‘개그맨’**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도입했습니다.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, 개그를 하나의 전문 공연 장르이자 직업군으로 자리 잡게 만든 전환점이었습니다.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‘개그맨’이 바로 그의 유산입니다.
🎬 작가에서 무대로 – 독특한 출발
전유성의 시작은 남달랐습니다. 연극연출과를 졸업했지만 배우로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. 그러나 우연히 방송 작가로 참여하면서 숨은 재능을 발휘했고, 결국 작가 출신 개그맨이라는 독특한 커리어를 개척했습니다.
- 날카로운 언변
- 시대를 꿰뚫는 풍자
-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
그의 개그는 기존의 슬랩스틱과는 전혀 달랐고,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.
🎪 개그콘서트의 아버지
1990년대 후반, 전유성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하던 공연을 방송으로 옮기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. 그것이 바로 **KBS <개그콘서트>**의 탄생입니다.
- 공개 코미디 장르 개척
- 시청자 참여형 무대
- 후배 개그맨들의 실험 공간 제공
이 프로그램은 무려 20년 넘게 장수하며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.
💖 후배들의 스승이자 후원자
전유성은 단순히 무대를 만든 개그맨이 아니었습니다.
- 사비를 털어 무명 개그맨 지원
- 아이디어가 막히면 전유성을 찾으라는 말이 생길 정도의 조언자
- 마지막까지 후배들을 격려하며 유머를 잃지 않았던 선배
그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사람을 키우는 마음에 있었습니다.
🌟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맨
그는 코미디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.
- 심야극장·볼링장 창안
- 인사동 복고풍 카페 운영
- 영화감독 활동
- 1990년대 IT 관련 저서 출간
“인터넷,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”, "전유성의 구라 삼국지" 등 책 17편을 쓴 개그맨, 지금 들어도 놀라운 도전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.
🕊️ 마지막까지 유머로
산소호흡기를 낀 채 후배들에게 “건강해라”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는 전유성을 상징합니다. 그는 자신의 장례식 형식까지 직접 정리하며 준비된 이별을 맞았습니다.
📌 전유성 약력
- 1949년 1월 28일 출생
- 1968년 TBC 특채 코미디 작가 데뷔
- 1970~80년대 방송 코미디 전성기 주도
- 1990년대 개그콘서트 원안 기획
- 2025년 9월 25일 별세
💐 마무리
전유성은 단순히 웃음을 주던 개그맨이 아니라, ‘개그맨’이라는 직업의 뿌리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. 그가 남긴 무대와 정신은 후배들에게 이어져 한국 코미디는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.
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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